
해마다 봄이 찾아오면 마음 한 편엔 따뜻한 봄 햇살에 대한 기대가 가득하지만 나의 기억 한 편에는 화창한 봄 햇살을 시샘하며 하늘을 뿌옇게 덮는 황사의 기억에 대한 우울함이 자리 잡고 있다.
몇 년 전 봄,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향하던 중 한반도 전체를 덮었던 무시무시한 황사에 대한 경험을 떨칠 수 없다. 온 하늘이 뿌연 먼지로 가득 차 있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항공기가 정상적으로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인가 몹시 두려웠다.
창밖을 내다보며 내가 몸을 싫었던 항공기가 김포공항에 무사히 착륙할 수 있기를 얼마나 간절히 소망했는지 모른다.
황사의 계절이 찾아오면 언론에서는 황사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방송들을 집중적으로 내보낸다.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손을 씻어야 한다 등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황사가 건강에 매우 좋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도 흔히 접하게 된다.
그러나 연구자 입장에서 문헌을 검색해 보면 실제로 황사가 우리 호흡기 점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초 및 임상 연구는 놀라울 정도로 전무한 상태이다. 황사라는 현상이 중국이나 몽고에서 발원되어 바람을 타고 동쪽으로 향하기 때문에 중국 및 우리나라가 가장 큰 피해지역인데도 불구하고 실상은 우리나라 및 중국 연구자들이 큰 관심을 갖고 연구를 추진해 오지 않아 국제적인 학술지에 실린 연구결과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필자의 임상적 주 관심영역은 코성형 수술이지만, 기초연구로는 감기바이러스인 리노바이러스의 병태생리학적 역할에 대한 연구를 꾸준하게 해오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게 되었다.
황사시즌이 되면 감기에 더 쉽게 걸릴까? 감기 걸린 환자가 황사에 노출되면 어떤 영향을 받을까? 황사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감기와 유사한 증상이 유발될 수 있을까?
이상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역학조사가 필요하다. 그러한 역학조사에는 많은 시간과 연구자본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실험실적 상황에서 연구모델을 디자인하여 이상의 의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하였다.
이 연구 프로젝트에 대하여 한국연구재단에서 연구비 지원이 결정되어 연구를 진행하였고, 작년 12월 환경 및 대기오염에 관한 연구주제를 다루는 국제적 학술지인 흡입 독성학(Inhalation Toxicology)에 연구논문이 게재되었다. 그 논문의 내용을 지면을 통하여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논문의 제목은 ‘황사는 사람의 코점막 상피세포에서 리노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된 싸이토카인 분비와 바이러스의 복제를 증가시킨다’ 이다.
이 논문에서는 코수술 환자로부터 채취한 코점막 상피세포를 배양하였다. 황사는 가천의대의 협조를 받아 인천지역에서 포집하였다. 리노바이러스는 우리 연구실에서 계속 배양해오던 것을 사용하였다. 우선 배양된 코점막 상피세포에 황사, 리노바이러스, 두개의 동시 투여군의 세 실험조건을 만들었다. 그 다음에는 상피세포에서 IFN-γ, IL-1β, IL-6, IL-8의 분비양을 측정하였다. 참고로 이상의 물질들은 감기환자에서 많이 분비되는 염증매개물질로, 이러한 물질의 분비량은 환자의 증상의 정도와 비례한다.
그리고 황사가 리노바이러스의 증식에 미치는 영향도 조사하였다. 실험 결과, 필자가 예상하였던 것과 같이 리노바이러스는 세포에서 IFN-γ, IL-1β, IL-6, IL-8 분비를 증가시켰다. 그러나 재미있었던 사실은 황사만 처리되었던 세포에서도 IFN-γ, IL-1β, IL-6, IL-8 과 같은 염증 매개물질이 비슷한 정도로 증가됨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는 감기에 걸리지 않고 황사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코점막에 감기와 유사한 정도의 염증반응이 나타날 수 있음을 제시하는 자료였다. 더욱이 바이러스와 황사 동시 투여군에서의 염증매개체의 분비는 단독 처리군에서 보다 훨씬 증가되었다. 이는 감기환자가 황사에 노출되면 증상이 더욱 심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자료이다. 또한 황사가 감기 바이러스의 증식을 증가시켰다는 것 또한 재미있는 발견이었다.
이로부터 감기환자가 황사에 노출되면 증상이 심해질 뿐 아니라 회복도 매우 더디어 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필자가 행한 이상의 연구는 감기와 황사의 관계에 대하여 연구한 세계 최초의 연구로써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추측으로만 알려져 왔던 황사의 호흡기 건강에 대한, 특히 감기에 대한 악영향이 필자의 연구로 명백해진 것에 대하여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 매우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