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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건강이야기
서울에서 만난 은인 저자 : 홍누리

 

“형님 눈이 또 빨개요.” 동료의 이야기에 순만(남, 65세) 씨는 거울을 봤다. 충혈된 눈동자는 물론 눈 주변에 옅은 멍이 들어 있었다. 점점 눈이 붓고 가렵다 못해 따가웠다. 포도막염이 또 문제였다. 2000년부터 동네 안과에 다녔으니 15년째였다. “맨날 눈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한번 가봐요. 이러다 예쁜 눈 다 버리겠네!” “공단 공기가 나빠서 그런가, 병원에선 쉬면 낫는 병이라던데···.” 동료들의 성화에 하루 휴가를 냈다.

 

별것 아닌 별것
몇십 년 만의 서울행이었다. 순만 씨는 여느 때처럼 외출 전 냉장고 앞에 멈춰 섰다. 정확히는 오랜 생활 흔적이 스며든 전국 지도 앞이었다. 여천 공단에서 컨테이너 지게차 운전을 30여 년 하면서 묵힌 꿈이 거기에 담겨 있었다. 퇴직만 하면 컨테이너 대신 아내를 태우고 전국을 쌩쌩 달려 보리라. 그 생각만 하면 신이 나곤 했다. “어쩌다 병원 간다고 서울을 다 가보네.”
서울아산병원에 도착하니 세상에 아픈 사람이 전부 와있는 듯했다. 의사는 아직 특이점이 크지 않으니 지켜보자고 했다. 약 처방과 함께 다음 진료 일정을 받았지만 순만 씨는 가볍게 무시했다. ‘별것도 아닌 걸로 유난 떨었네~.’ 의사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여파는 1년이 지나서야 나타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앞이 뿌옇고 안경을 껴도 잘 보이지 않았다. 단순한 노안인 줄 알았는데 안압이 40mmHg까지 오르면서 핏줄이 터졌다. 부랴부랴 서울아산병원으로 달려왔다. 포도막염은 그 사이에 녹내장으로 번져 있었다. 수술을 진행하면서 각막에 문제가 있는 것도 발견했다. 이식이 최선인가요?
“죽은 사람의 눈을 제 눈에 이식한다고요?” 처음 만난 안과 이훈 부교수가 각막 이식을 이야기했을 때 화들짝 놀랐다. 이렇게 상황이 나빠질 줄도 몰랐지만 이식이라면 거부감부터 들었다. 기증자가 나오기만 기다려야 하는지 걱정이 앞섰다. “각막은 기다릴 것 없이 빨리 이식할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부교수는 이식에 관한 편견과 오해를 이미 예상한 듯 상세히 설명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처음부터 꾸준히 치료를 받았다면 병을 키우지도 않았을 텐데….’ 흐릿한 시야에도 아내와 딸의 눈물은 잘 보였다. 가족이 우는 것만큼, 가장이 아픈 것만큼 서로에게 슬픈 일이 없었다. 수술하느라 마음고생을 할 바엔 조금 불편하게 조용히 지내는 게 낫지 않을까 며칠을 심사숙고했다. 마음을 먼저 추스른 아내가 말했다. “하고 후회하나 안 하고 후회하나 똑같으면 해봐야죠. 서울아산병원이 국내 최고 병원이라고 하던데 어련히 잘해줄까!”

 

천국과 지옥 사이
2019년 12월 수술을 위해 올라왔다. 코로나19로 입원 절차가 복잡했다. 병동에 도착하니 이미 밤이 깊었다. 피곤과 긴장이 몰려왔다. “아버님!” 뜬금없이 이 부교수가 나타났다. “교수님이 어떻게 이 늦은 시간까지 계세요?” 순만 씨는 놀라면서도 ‘내 편’의 등장에 든든했다. 그렇다고 이 부교수가 늘 다정한 건 아니었다. 이식 후 병실을 나서는데 “3일 동안 가만히 누워 계셔야 한다니까 벌써 나오시면 어떡해요?” 이 부교수의 매서운 목소리가 병동에 울렸다. 크리스마스에도, 연말에도 어김없이 병동에 나타났다. ‘젊은 양반이 보통이 아니네~.’
수술 후 시력은 0.9까지 올라왔고 뿌옇던 것도 모두 걷혔다. 눈동자 모양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눈 걱정 없이 보낸 몇 개월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한껏 들뜬 순만 씨는 “운동이나 영양 관리를 잘해주시고 이식 거부 반응이 나타날 수 있으니 그땐 빨리 병원으로 오세요”라는 이 부교수의 조언을 까맣게 잊었다. 덜컥 한쪽 눈이 안보이기 시작했을 때도 병원행을 미뤘다. 왜곡된 시야 때문에 침대 모서리에 눈을 부딪쳐 퉁퉁 붓기도 하고, 혼자 발을 접질리기도 했다. 참다못해 병원에 오는 길엔 버스에서 두 번이나 나뒹굴었다. 다리가 덜덜 떨려 한 발짝 내딛기도 두려웠다. ‘이러다 죽겠구나!’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마음
역시나 이식 거부 반응 때문이었다. 이 부교수는 왜 진작 오지 않았냐며 호통치면서도 안타까워했다. 설마 하며 병원 오기를 차일피일 미룬 게 화근이었다. 입원해 주사 치료를 받았지만 온종일 역겨워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고통이 심해지자 재이식을 결정했다. 처음 수술할 때보다 긴장감이 더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나날이었다. 이식 후 손바닥이 두 눈에 보였을 때 순만 씨는 웃으며 울었다. 당연한 것을 잃었다가 찾은 기쁨 때문이었다. “나는 지게차 운전 기술자인데 교수님은 사람 몸을 운전하는 전문가네요!” 이 부교수는 개인 연락처를 알려주며 말했다. “아프면 참지 말고 바로 연락주세요.”
순만 씨는 새벽 6시면 기상해 약을 챙겨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퇴직한 뒤에도 회사에선 순만 씨의 노련한 운전 실력을 필요로 했다. 건강한 눈이 있어 다행이었다. 퇴근하면 아내와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세웠다. 전국의 도로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그러다 눈이 조금 피곤했던 날, 이 부교수에게 질문을 보냈다. 반나절이 지나도록 답이 없었다. 밤 10시. 자려고 누웠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이 부교수의 긴 설명이 담긴 문자였다. ‘우리 교수님 환자 보느라고 또 이 시간까지 바쁘셨나 보네!’ 순만 씨는 오늘도 눈이랑 잘 지냈다는 답 문자를 쓰다가 이내 지웠다. 교수님이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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