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이야기
[정신건강칼럼 11월]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쉼 ? 취미(趣味) 생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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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스트레스와 쉼 – 취미(趣味) 생활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강사 윤운
현대인은 고도로 복잡화된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가족 단위로 모여 지내며 가정이 곧 직장이었던 과거에는 가족 내에서 정해진 역할만 수행하면 되었지만, 요즘은 가정과 직장이 분리되어 있고 개인에게 기대되는 역할도 다양합니다. 또 과거처럼 가족간/개인간 유대가 강하지 않은 경향이 있어, 일상에서 축적되는 스트레스나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도 쉽게 찾기 어렵습니다.
병원에 내원하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일상에 매몰되어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은 채 생활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꼭 직장에서 바쁘고 하는 일이 많은 분들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당면한 고민에 휩싸여 괴로워하느라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한 채 지쳐가는 분들도 많습니다.
스트레스가 적절히 해소되지 못하고 쌓이게 되면 편안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주변 사람들과 쉽게 마찰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프로이드(Sigmund Freud)가 말한 공격성(aggression) – 정신적인 에너지의 일종 – 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자아(ego)의 기능이 약해지면서 사람에게 내재된 공격성이 적절히 통제되지 못하고 자신과 타인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도 쉽게 불안해져서 차분히 처리할 일에 조바심을 내게 되기도 하고, 예민해져서 쉽게 짜증을 내기도 하며, 극단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과격한 말이나 행동을 하거나, 심한 자기 비난, 음주, 과도한 쇼핑, 폭식 등의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스트레스 상태가 겉으로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려 객관적인 판단을 그르치기도 하고, 지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끌거나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행동 패턴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될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도움을 받아 회복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회복된 이후에 스트레스에 대한 본인만의 해소 방편을 마련한다면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과도한 스트레스 자체가 줄어든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적인 이유로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요? 자신만의 전환활동 또는 취미생활을 가지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취미(趣味)생활의 뜻을 사전에서 검색해 보면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금전적 목적이 아닌 기쁨(pleasure)을 얻는 활동’ 등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 활동을 함으로써 일상의 긴장감이 해소되고 편안함, 즐거움을 느낀다면 큰 뜻에서 취미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격적인 정신적 에너지를 놀이나 스포츠로 승화시키는 것은 공격성을 풀어내는 방법 중 가장 바람직하고 성숙한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취미생활이라고 해서 꼭 거창하거나 돈이 드는 활동일 필요는 없습니다. 제게 이렇게 물으신 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주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푸는데 괜찮은 건가요?’ 다른 사람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스스로에게 쉼과 만족감을 주는 것이면 됩니다. 하루 중 잠시 짬을 내어 본인이 좋아하는 장소에 가서 천천히 걷거나,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면서 긴장을 풀고 마음을 추스려도 됩니다.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내어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취미 생활의 본질은 성과나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삶이 보다 풍요로워지고 나아가서는 한 발짝 물러나 자신에 대한 관찰이 가능해지기도 합니다.
‘악취미가 무취미보다 낫다’는 일본의 속담, 인간의 진짜 성격은 그의 오락에서 알 수 있다(The real character of a man is found out by his amusements.)는 화가 레이놀즈의 말처럼, 취미생활을 통해 긴장된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고 정신의 건강도 함께 챙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