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이야기
[정신건강칼럼 8월] 정신치료에 관한 단상(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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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치료에 관한 단상 (1)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신용욱
정신치료라는 말 대신에 상담치료, 카운셀링, 면담치료 같은 용어들을 대신 사용하기도 한다. 정신치료라는 말이 듣기에 따라서 상당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도 정신이라는 말이 가진 다양성과 그 이중성 때문에 비롯되는 것 같다. 정신(精神)이라는 말은 ‘신체와 정신’이라는 말에서와 같이 신체와 대비되는 의미에서의 마음 혹은 영혼이라는 의미가 있고‘정신이 없다. 정신차려야 한다’고 할 때 처럼 의식 혹은 인지기능적인 측면을 포괄해서 이야기하기도 하며 ‘민주주의 정신’이나 ‘르네상스 정신’등과 같이 어떤 이념이나 사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정신과 치료라는 말이 함께 붙어 사용될 때에는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정신이라는 단어가 앞에서 말한 여러 의미들을 포괄하여 그 드높여진 위상과 무게가 있어 정신을 치료한다고 하면 무언가 치료를 받는 사람에게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실은 정신치료는 가벼운 치료가 아니다. 정신치료가 상담치료, 카운셀링, 마음치료라고 불리울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정신치료는 어떤 특정한 효과를 위해서 틀에 박힌 정해진 방식으로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치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혹자는 정신치료라는 것이 대화이고 누구나 선의를 가지고 어떤 사람의 말을 경청한다면 그 대화가 곧 치료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선의(善意)라는 것이 다른 이에게도 과연 선의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커다란 ‘선의’로 시작한 십자군 전쟁이 얼마나 많은 비 윤리적 결과를 초래하였는가.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발생하며 치료자가 자신의 선의라는 표면 아래에 어떤 편견과 갈등과 욕망이 숨어 있는지를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 선의는 곧 무지와 악의로 바뀔 수 있다. 치료를 받으러 왔다가 더 심한 내상을 입고 치료실을 떠나는 내담자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신치료는 내담자의 의식과 무의식을 모두 포함해서 보려고 노력한다. 또한 정신치료는 치료자의 경험이나 지식으로 내담자에게 섯부른 충고나 조언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신치료에서는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에게 맞는 해결책이 있기를 희망하며 그 사람이 스스로 그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때로는 훈계와 교육, 강력한 조언과 같은 방법이 요구되는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방법만으로 치료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정신치료라고 할 수 없다.
고백하자면 외래에서 많은 환자를 대하고 정신없이 진료를 할 때면 나는 오직 실수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환자를 본다. 그때에 나는 어느 정도 보편적인 것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간다. 고통과 삶의 곤란을 듣고 사람이면 누구가 그렇게 느낄 만한 감정으로 환자를 대하고 약물을 처방한다. 그러면서 나는 항상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데 말하자면 위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칼 융은 ‘개별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에 대해 아무 의미도 없고, 보편적인 것은 개별적인 것에 대해 아무 의미도 없다’라고 하였다. 내담자와 문제에 대해 누구나 그렇게 느낄만한 감정과 해결책으로 그 내담자를 치료하고 있다면 대개 그것은 그 개인이 가진 ‘보편적인 부분’에 관해서만 유효하며 그의 진실로 개인적인 부분은 건드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개인의 문제와 해결책은 거의 항상 그 개인적인 부분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