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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칼럼 5월] 웰빙을 넘어 웰다잉을 이야기하다

웰빙을 넘어 웰다잉을 이야기하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전임강사 윤소영

 

 

죽음은 그다지 생각하고 싶은 주제가 아니다. 죽음이라는 단어에서 무엇이 연상되는가? 개인의 경험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죽음은 끝, 암흑, 불의의 사고, 질병, 고통, 이별, 슬픔 등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 개념, 사건들과 연결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죽음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마지막은 어떠하였으면 좋을지 생각해 볼 수는 있는 일이다. 그리고 때로는 이러한 생각이 현재의 삶을 더 의미 있게 살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어떠한 죽음을 원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리고, 때로는 재수없게 왜 그런 것을 묻느냐며 불쾌해 하기도 한다. 하물며 완치가 불가능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어떠하겠는가? 물론 이 것은 무척 조심스럽고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너무 늦으면 사라져버리게 되는,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에 관한 이야기이다.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일부 경우를 제외한다면, 현대인의 대다수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암을 비롯한 만성질환을 앓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아무리 연장되어도, 누구나 언젠가는 회복 불가능한 건강 상태에 이를 수밖에 없다. 암과 같은 질환의 경우에는 병이 진행 상태를 보아 환자에게 약 3-6개월 가량의 시간만이 남게 되는 ‘말기’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이 시기를 적절히 예측하여 여생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하는 문제가 최근 이슈이다. 근거에 의하면 말기 암 환자에게 항암치료를 지속한 경우 보다 고통스러운 증상을 완화하는 쪽으로 치료를 전환하는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오히려 생존기간도 연장된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결정을 하는 시점은 곧 죽음이 시작되는 시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환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호자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늦추고 싶은 마음에, 의사는 환자를 포기한다는 자책감에 모두 이 순간을 직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실제로 환자들은 무의미한 치료를 이어가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괴로워하다가 병원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

 

만약 우리가 생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다면, 고통 속에서 갑작스럽게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죽어가는 환자도 엄연히 살아있는 존재이며 이 시기의 삶의 질도 중요하다. 우리가 웰빙(well-being)을 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면, 이 잘 사는 것의 궁극은 잘 죽는 것, 즉 웰다잉(well-dying)이 아닐까 생각한다. WHO 에서는 환자와 가족이 가능한 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고, 소망을 존중 받으며, 임상적·문화적·윤리적 기준에 부합하는 죽음을 좋은 죽음으로 정의하였다. 다시 말해서, 적절한 죽음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요인이 갖추어 져야 한다. 첫째, 통제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내적 갈등이 되도록 감소되어야 하고, 둘째, 개인의 정체감이 유지되어야 하며, 셋째, 중요한 대인관계는 격려되거나 유지되고, 갈등은 가능한 한 해소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령 한계가 있더라도 삶의 의미를 찾고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여 달성하도록 격려되어야 한다(Weisman, 1972). 결국 인간답고 존엄하게 생을 마무리하기를 원한다면 바로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 말이다.

 

호스피스라 하면 죽으러 가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여 환자나 가족들 모두 기피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호스피스는 인간이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도움을 주려는 시설이다. 우리 나라도 조금씩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아무런 준비도 해두지 않으면, 의사 결정 능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평소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결정이 타인에 의해 내려질 수 있으며, 이는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손상되는 일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서 기계에 의존한 연명의료나 특정 조치들을 거부한다는 자신의 의지를 밝혀 두는 문서인데, 꼭 이 같은 문서를 작성하지 않더라도 평소 기회가 된다면 가족들과 대화를 통해 생각을 이야기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문화로 정착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죽음 이후는 미지의 세계이지만, 두렵다고 피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당하는’ 죽음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맞이하는’ 죽음을 위해서는 병세가 깊어지기 전에, 그리고 이왕이면 건강할 때에 스스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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