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이야기
[정신건강칼럼 5월] 꾀병도 병일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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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병도 병일까요?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강사 손 승 현
보험금 준 교통사고 목 부상 46%가 ‘꾀병’ , “메르스 걸렸는데요” 얌체 꾀병 환자들 왜들 이러십니까?” “꾀병이지? 아파도 말 못하고… “
꾀병은 과연 병일까요? 이번 이야기에서는 임상현장에서 축적된 꾀병의 개념과 분류, 특징들을 살펴보며 과연 꾀병이라는 것은 무엇일지에 대해 탐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꾀병이라는 단어는 외부적인 이득을 획득하기 위해 과장된 증상을 의도하는 상태를 칭합니다. 외부적인 이득, 외적 이득 이라는 단어는 환자가 치료를 통해 1차적으로 얻게 되는 의학적 이득과는 다른, 병역의무 회피, 업무 회피, 재정적 보상, 형사상 처벌 모면, 약물 획득과 같이 외부적인 요인과 관련된 이득들을 말할 때 쓰입니다. 꾀병은 양상에 따라 아예 없는 질환을 꾸며내는 순수한 꾀병, 있는 증상을 과장하거나 사라진 증상을 보고하는 부분적 꾀병, 인과관계가 없는 상황을 증상의 원인으로 탓하는 책임 전가 등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정신과적 진단 체계에 따르면 질환으로 분류되어 있지는 않으며, 임상적 관심의 초점이 될 수 있는 기타 상태라는 다소 어려운 카테고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분명 병은 아니지만 병원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데다가, 의사-환자 관계의 심각한 손상, 의료자원의 낭비라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주의해서 지켜보자 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꾀병이 의심되는 환자를 볼 때 주로 정신과에서는 증상을 의도해서 나타내나 그 목적이 환자 역할 (sick role) 을 하는 자체인 허위성 장애, 무의식적인 욕구나 스트레스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채 신체증상이 나타나는 전환장애 혹은 신체화 장애 등과 감별하게 됩니다.
꾀병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주의하여 지켜보게 됩니다. 법의학적 상황에서 의뢰될 때, 검사결과나 진찰결과와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심각한 불일치를 보일 경우, 진단에는 비협조적인데 치료에는 협조적일 경우, 마지막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경우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유명한 사례로는 한국의 연쇄 살인마 ㅇ모씨에 대한 예를 들 수 있겠습니다.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과 슬픔, 공포를 안겨 주었던 그는 93년 승용차 절도 혐의 당시 정신증을 주장했는데, 당시 입원 후 정신감정을 1달 시행하였고 본인이 주장하는 정신분열증세는 관찰 할 수 없었다 라고 합니다.
꾀병은 드물지 않으며, 소속된 집단에 따라 그 비율이 다양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문헌에 나온 결과로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외상으로 인한 가벼운 뇌 손상 시 7.5 %, 법적인 문제와 연관 시 20%, 외부적 이득이 있는 상황에서 심리검사 시 꾀병을 시도할 확률이 최소 33%라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 된바 있는데, 아래에 기술할 여러 한계점들로 인해 추정치가 많이 포함된 만큼 그 보고를 있는 그대로 신뢰하기에는 어렵다고 합니다.
꾀병 진단은 어렵고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먼저 검사를 통한 확진이 어렵습니다. 심리검사를 통해 환자의 심리적 증상은 평가할 수 있으되, 그 동기까지 평가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진단기준이 모호해 의사의 주관적 판단이 많이 작용하며, 이전보다 환자가 진단기준과 검사도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쉬워졌습니다. 꾀병 자체의 특징 또한 진단을 어렵게 합니다. 환자가 증상을 호소하고 치료 받는 과정에서 외적 이득 추구 경향을, 실제 얻는 이득을 있음, 없음으로 칼로 무 자르듯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요? 외적 이득을 얻게 된다고 해서, 치료적 이득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래서 일부는 꾀병을 (2차 이득 추구 경향을) 남자, 여자 같은 카테고리가 아니라, 키나 몸무게 같은 연속된 범주에서의 개념으로 이해하자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수치를 어떻게 객관화 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 숙제로 남게 됩니다. 의사에게 심적 부담을 크게 준다는 점 또한 진단을 어렵게 합니다. 의사는 환자의 말을 믿고 치료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인데, 자칫 의사-환자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는 꾀병 진단은 쉽게(거의) 내리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꾀병을 놓칠 때에는 사회나 병원 전체에서 그 손실을(의료 자원 낭비) 나눠서 흡수하게 되지만 실제 질환을 꾀병으로 잘못 진단했을 경우 환자, 의사 둘이서만 모든 부작용 (진료기회 감소, 신뢰관계 손상)을 감당하게 되기 때문에 더욱 부담감은 커집니다.
꾀병에 대한 대처는 섬세하고도 어려운 작업입니다. 일부 문헌에서는 꾀병부리는 자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을 강조합니다. 공격적인 추측이나, 참회는 최소한으로 하면서, 현 상황에 대한 언급을 해주는 것이지요. 꾀병의 무의식적인 동기에 대한 파악을 동시에 하면서, 동기의 제거나 감소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애초에 질환이 아닌 것을 ‘치료’하려 하는 시도기에 어려움은 남습니다.
때문에 사회적인 합의와 제도적인 정비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어린 시절 밭에서 어린이가 오이 하나, 토마토 하나를 따먹는 것을 범죄로 여기고 색출하자라고 하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나, 다른 동네에서 트럭을 타고 와서 우리 집 밤나무를 싹 털어간다면 누구라도 분노를 참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죽 먹을게 없으면 그렇겠나, 적당히 밤을 주면서 트럭운전수가 불만 가지지 말게 하자 라고 하면 밤나무 주인에게는 너무 가혹한 처사가 될 것입니다. 꾀병에 대한 시선은 앞서 말한 이 두 지점 사이 어딘가에서 형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집단간의 대화가 많이 필요합니다. 꾀병에 대한 사회적 합의 또한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힘들면 꾀병 부릴 수도 있지, 꾀병도 병이다 라는 생각은 자칫 전체 의료수준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 할 수 있습니다. 그 피해는 결국 의료인, 일반 시민들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꾀병 시도 2주 이내에 이를 시인하면 예후가 좋지만 만성이 되면 해결이 어렵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 말은 꾀병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거나 이중적이어서 처치/시인이 늦어질 경우 꾀병 당사자 또한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만성 증상을 계속 호소할 수도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정의로운 의료서비스를 받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고민하는 의료인들에게 여러분들의 지혜와 따듯한 마음, 일관된 기준을 나누어 주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