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이 따뜻하게 기억될 수 있도록...
- 진료협력팀 백솔 과장 -
“우리 아빠가 암이래요. 어떻게 해야 하죠?” 수화기 넘어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선 자세한 상황 파악을 위해 환자의 인적사항과 검사 결과 등을 물었다. “어제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폐암이래요. 여기는 지방의 작은 병원이라 수술은 못할 것 같다고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딸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나는 동요되는 감정을 애써 누르고 침착하게 말했다. “많이 놀라셨죠? 혹시 진료 자료를 가지고 계시나요?” 딸은 다행히 자료를 가지고 있었고 메일로 내용을 받아보았다.
환자는 조직검사와 영상검사 결과 폐암 3기A로 추정되어 수술을 권유 받은 상황이었다. 환자 나이가 40대 중반인 것으로 보아 딸은 스무 살 전후로 짐작됐다. 진료, 검사, 수술, 그리고 추후 진료까지 병원에 자주 내원해야 하는데 어린 딸이 홀로 감당하기엔 버거운 일이라 걱정이 됐다. 나는 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조심스럽게 말했다. “폐 수술을 하는 외과 교수님 진료를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아버님을 모시고 와서 진료를 봐야 하고, 그 이후로도 자주 내원해야 할 텐데… 실례지만 다른 보호자도 계신가요?” “아뇨. 저 혼자예요. 제가 모시고 갈 수 있어요. 갈게요.” 딸은 담담하게 말했다. 어린 딸이 갑작스레 짊어지게 된 삶의 무게가 걱정됐지만 담담한 대답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딸은 아버지가 폐암일 수 있다는 소견을 들은 뒤 폐암에 대한 공부를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폐암 환우회 커뮤니티에 가입했고 유튜브도 보고 있어요. 폐암은 종류가 많고 치료 약제도 너무 많아서 잘 모르겠어요. 막막하네요….” 힘든 상황에서도 아버지를 위해 노력하는 딸이 대견하고 또 안쓰러웠다. 인터넷으로 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지만 양이 방대하고 정확하지 않은 자료도 많다. 나는 질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우리 병원 유튜브 및 메디게이션의 폐암 교육 자료를 공유하고 환자가 앞으로 진행하게 될 검사와 수술, 항암 치료 등에 대한 설명을 했다.
며칠 뒤 환자와 딸이 나를 찾아왔다. 딸은 예상대로 앳된 얼굴이었다. “간호사님 덕분에 진료 잘 봤어요. 수술도 빨리 잡혔어요. 처음 암이란 말을 들었을 때에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너무 무서웠어요. 그때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내용과 병원 교육 자료들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오늘 교수님 설명까지 듣고 나니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졌어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환자는 딸 뒤에서 싱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수술 날짜가 빨리 잡혀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렇게 든든한 따님을 두셔서 남은 치료도 잘 받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여기서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나는 진료협력팀에서 일하기 전까지 10년 넘게 종양내과 병동 간호사로 근무했다. 많은 환자들과 울고 웃으며 이들의 처음은 어땠을까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지금 나는 암환자의 시작과 만나고 있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순간 환자와 가족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우울, 불안감, 두려움, 상실감 등 충격에 빠지게 되고 삶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린다. 따라서 암을 진단받은 환자에게 적절한 진료 예약은 물론 질환에 대한 정보 제공과 정서적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우리 서울아산병원을 찾는 암환자를 상담하는 간호사로서 그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동행자가 되길 바라본다. 서울아산병원과의 첫 만남이 따뜻하고 편안하게 기억될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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