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하지 않기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이주갑

  불안하고 우울해하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명문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을 미루고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수년 동안 사회 활동이나 인간관계 없이 혼자 지냈다. 그는 이제 남들처럼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계속 걱정만 할 뿐 어떤 행동도 시작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수준에 맞지 않아 할 수 없다고 했다. 뭔가를 이룰 때까지는 사람도 만날 수 없다고 했다. 대신에 그는 철학 책에 몰두했다. 철학에 몰두하면 삶의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가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와 그로 인해 느낄 불안을 이해할 수 있다. 가뜩이나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간의 공백이나 나이를 생각하면 취업의 벽이 더욱 높게만 느껴질 것이며, 어떤 일들은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주위의 시선이 신경 쓰이게 할 수 있다.

  문제는 그가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일을 하지 않고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 때문에 걱정이나 불안, 우울감이 생겼는데 철학 책을 들여다보면서 해결책을 찾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철학 책을 읽는다 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철학 책을 읽음으로써 그는 불편한 문제를 ‘회피’하면서 자신은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리화’하며 ‘위안’을 얻는다.

  이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경험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시험기간만 되면 평소 안 읽던 책이 읽고 싶어지거나 관심도 없었던 신문이나 뉴스를 열심히 찾아보는 경우가 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당장 시험공부를 대신할 일을 찾고 그것을 하면서 꼭 해야만 하는 시험 공부를 미룬다. 불편한 문제를 일시적으로 미루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으며 이것을 마음이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문제를 계속해서 회피하고 미루기만 한다면 전혀 해결되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악화될 뿐이다. 노이로제도 점점 더 심해진다. 문제를 똑바로 쳐다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설사 그 행동이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문제를 해결하고 노이로제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