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 향유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심리수련생 민정향

  잔잔히 불어오는 미풍과 함께 몸을 감싸는 물결, 너른 시야 속에 펼쳐진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찰나의 연속들, 잠시 곁에 머무른 파도에 은근하게 담긴 목소리들, 잘게 쪼개진 순간들이 미묘한 색의 파장을 그리며 피어오르는 광경.

  제가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가까운 책장에 담겨있는 장면입니다. 일년여 전, 타지에서 경험한 순간이지만 지금도 눈을 감고 생생히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감명깊었던 순간입니다. 그 풍경 가운데, 온 몸의 감각이 깨어있다는 느낌, 모든 조각들이 관통되는 이 완벽한 순간을 선물받았다는 감사함, 내가 모르는 큰 계획에 임하고 있다는 경외감들이 밀려왔습니다. 모든 것들이 변화하는 순간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어떤 시공간의 한 면에 잠시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위의 순간이 감동을 넘어 행복으로까지 다가왔던 점은 아마도 제 자신을 몰아세우는 여정에만 몰두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치있는 삶은 치열한 쟁취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여겨왔고 그 경쟁 속에서 한시도 게으름을 피우면 안된다는 초조함,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쉬게되면 즉시 뒤쳐질 것이라는 조바심때문에, 향유와는 거리가 먼 순간들을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저 하나뿐 아니라 오늘날을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내용일 것 같습니다. YOLO(You Only Live Once)의 열풍 또한 이러한 삶의 반작용을 반영하고 있다고도 여겨집니다.

  이러한 체험에 대해 공유하자, 가까운 지인이 건넨 코멘트 중 공감이 갔던 문장이 있어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의미는 맥락에 있고 행복은 감각에 있다

“Meaning is contextual, and Happiness is sensational.”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 가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한 편으로는 매순간 녹아들어 있는 감각적 울림들은 다소 등한시되고, 그 중요성이 잊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감각적으로 풍요로운 체험/휴식 속에서는 단순히 감각적 쾌에 그치는 경험이 아니라, ‘살아 숨쉰다’는 지각부터 어떠한 큰 계획 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경외로움, 그렇기에 한명 한명 가슴 속에 떠오르는 사람들과 그 소중한 인연들에 대한 감사함 등의 다채로운 감정들뿐 아니라, 회복탄력성을 제공해주고 좁아져있던 시야까지도 전환시켜주는 힘을 지닌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행복’의 장에 어떤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으신지요? 혹시 미래의 가치있고 인정받는 삶을 위해, 현실에 맞닿아 있는 감각들을 충분히 향유하는 경험은 잊혀져 있는 것은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