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이야기
[정신건강칼럼 12월] “ 그뤠잇 폰, 스튜핏 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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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뤠잇 폰, 스튜핏 미?”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심리전문가 노은아
시댁 어른들의 생일, 부모님의 전화 번호, 친구들의 아이 이름….스마트폰 메모 확인 필수죠. 둘도 없는 길치이지만 목적지의 방향도 모르면서 용감하게 운전대를 잡고 음성인식으로 메모해주는 스마트폰 기능 덕에 맞춤법 검열도 생략합니다. 공상과학영화에서 보던 일들이 실현되는 멋진 시대를 살고 있지만, 눈부신 기술의 발달이 나의 손, 발 뿐만 아니라 뇌까지도 나날이 게으르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가끔 염려스럽습니다.
실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을 때 보다 두고 와서 사용할 수 없을 때,적극적으로 고민하여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할 확률이 유의미하게 높아진다는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인지심리학자 아드리안 워드의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이 어려운 문제나 과업에 대한 집중력도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철학자 앤드 클라크는 우리의 지적 능력을 ‘뇌’라는 물리적 영역으로만 한정 지을 수 없고 “확장된 정신"안에서 일어나는 포괄적인 기능으로 이해해야 된다고 합니다. 외부의 가용자원들이 우리의 정신 그 자체만으로만은 이룰 수 없는 일들을 해주기 때문이라는 주장인데, 예를 들어 연필과 종이가 없다면 4자리 숫자들을 곱하는 것이 훨씬 어렵겠으나 연필과 종이가 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아닙니다 즉, 인간의 인지라는 것이 우리 뇌 이외의 많은 외부의 가용자원들에 의존하게 되므로 이것들도 지적 능력의 연장으로 봐야된다는 겁니다.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지적 능력의 개념 자체가 변화되었다는 지적들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서적이나 교육, 다양한 형식의 체험을 통해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기억하는 것이 지식인의 필수덕목이었다면 쓸모없는 정보들을 포함하여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들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는 정보를 무조건 많이 습득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유용한 정보를 어디에서 구하면 되는지, 어떤 정보들을 선택해서 적용할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IQ의 개념으로 보자면 유동성지능과 결정성 지능의 개념인데,유동성 지능이란 정보를 얻고 처리하는능력으로 컴퓨터의 처리속도, 램용량처럼 이 능력이 풍부할수록 빠르고, 쉽게 멀티 태스킹이 가능해지고 고난이도의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용이해집니다. 결정성 지능이란 실제 우리가 기억하는 지식, 우리 머릿속에 저장된 지식이며 미술 뿐만 아니라 건축, 의학, 수학, 과학, 철학과 같은 다방면의 학문들에 조예가 깊었던 레오나르드 다빈치 같은 인물이 이러한 결정성 지능의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영심리학자인 토마스 프레뮤지크에 의하면 현대에서는 대부분의 지식이 외부 위탁의 형태로 존재하며 이에 비해 개인의 지식 저장고는 최소한의 수준이므로 문제 해결 능력이 자신이 가진 지식의 양보다는 답을 구할 수 있는 연결고리들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즉, '하이퍼링크' 경제의 논리를 강조합니다. 마치 인간 스스로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처럼 기능하게 된다는 것이죠.
정보 통신 기술이 눈부신 현대에는 고전적인 의미의 ‘머리쓰기’의 노력은 그 중요성이 덜해진 것 같으나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능력이나 노력들이 요구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능에 대한 새로운 정의나 새로운 지적 능력에 대한 요구들을 각 개인들의 계발이나 후대들의 교육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도 필요해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