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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칼럼 12월] 외상 후 성장

외상 후 성장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촉탁임상전임강사 윤소영

 

 

  평생 한 번도 겪지 않으면 좋겠는 일들이 있다. 큰 교통사고, 건물 붕괴 사고, 지진이나 태풍과 같은 자연 재해, 암과 같은 질병 등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심각한 사건들 말이다. 소위 트라우마 사건이라고 할 때는 그 절대적인 위험이 매우 큰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 처하면 정도와 기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리 대범하던 사람이라도 큰 충격으로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겪는다.

 

  치명적인 질환으로 투병을 하는 많은 이들은 불가피한 상황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적응을 해 나간다. 한편, 단지 ‘적응’을 하는 것을 넘어서 이를 계기로 내면의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이들도 있다. 개인적인 역량과 삶에 대한 만족도가 트라우마 사건을 겪기 이전에 비해 더 향상되는 이러한 변화를 ‘외상 후 성장’ (post-traumatic growth; Tedeschi & Calhoun, 1996)이라고 부른다. 긍정적인 변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는데, 감사하는 마음과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평소 가치 있게 여기던 것들의 우선 순위가 달라지게 되고, 내적으로 더욱 강인해지고, 영적으로 풍요로움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사실 가늠하기 힘든 정도의 고통을 겨우 감내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일을 계기로 얻게 된 좋은 변화에 주목해 보라고 누가 섣불리 조언할 수 있을까? 주변에서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일어날 일도 아니거니와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상 후 성장을 경험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과 어떤 다른 면이 있기에 그러한 변화가 가능할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아무래도 평소 그 사람이 갖고 있던 성향이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외향적이고, 개방적이며, 낙관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긍정적인 대처 방식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요인들로는 그 사람을 둘러싼 주변의 지지체계와 종교 등이 언급되고 있다 (McCrae & John, 1992; Schaefer & Moos, 1998; Helgeson, Reynolds, & Tomich, 2006).

 

  외상 후 성장에 관여하는 요인들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는 조사일 뿐임을 이해해야 한다. 죽음 앞에 대범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고유한 삶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생명이 위협받는 큰 일에 마주하며 겪게 되는 개인적인 경험을 정량화하고 분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라우마 사건으로 성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안에 고립되어 부정적인 면 만을 반추하며 살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이 것은 오롯이 당사자가 겪어내야만 이룰 수 있는 아픈 과정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긴 시간이 소요될 수 있지만, 진정한 수용으로 가는 길 자체가 한 사람에게는 큰 성장의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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