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이야기
[정신건강칼럼 6월] 눈 빛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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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빛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심리전문가 김혜진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아이가 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에 활력이 하나도 없고 예, 아니오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는 모양새가 아이는 상당히 우울해 보입니다. 부모님은 한 번도 아이에게 공부를 잘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아이가 왜 저렇게 스트레스를 받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저도 참 궁금합니다. 그런데 면담을 마치고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질문이 있다며 대기자가 많아서 어렵게 신청해 놓은 학원이 있는데 저 상태에서 갈 수 있을지, 치료를 받으면 가능할지 묻습니다.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혹시 부모님이 학교 성적에 연연하지 말라면서도 결과가 좋지 않은 성적표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거나 실망하는 낯빛을 보이며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의중을 은근히 드러내지 않았을지 추측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말 뿐만 아니라 태도로 의사를 전달할 때가 있습니다. 그 중 표정은 우리의 태도를 잘 나타내주는 의사소통 방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Sorce 등의 연구자들은 생후 12개월 된 유아들을 대상으로 일명 시각절벽(visual cliff) 실험을 하였습니다(Sorce, Emde, Campo, & Klinner, 1985). 실험은 다음과 같습니다.
엄마와 아이 사이에 유리판을 두고 유리판 밑은 빈 공간으로 만들어 절벽처럼 보이게 합니다. 아이는 떨어지지는 않지만 절벽 앞에 있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고안되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유리판 반대편에 있는 아기가 유리판을 넘어오도록 격려하는데, 행복, 두려움, 흥미, 화, 슬픔을 나타내는 표정을 지어 보입니다.
결과는 엄마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을 때는 아이들 중 74%가, 흥미로운 표정을 나타냈을 때는 73%가 유리판을 건넜습니다. 반면, 슬픈 표정에서는 33%, 화난 표정을 지었을 땐 11%에 불과했고 두려운 표정에서는 아무도 건너지 않았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은 엄마의 표정을 판단의 참조점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엄마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에 따라 아이가 앞으로 나아갈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것 입니다. 아이들이 처음 보는 물건을 보고 엄마 얼굴을 본 후 만져도 괜찮은지 살피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내가 괜찮은 사람인지 판단할 때도 부모의 표정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Tronick은 '무표정의 경험(Still Face Experiment)'이라는 실험을 통해 엄마의 무표정이 아이에게 극도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간혹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지만 무표정하거나, 괜찮다고 하면서 한심한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니가 커서 뭐가 될래’ 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과 표정이 다를 때 아이들은 무엇을 참조점으로 삼게 될까요? 매우 혼란스럽겠죠? 분명 부모님이 화가 나있고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같은데 말로는 아니라고 하면 아이들은 속상한 마음을 호소할 수도 없고 양가감정을 가지기 쉽습니다. 양가감정은 마음에 갈등을 일으키고 심하면 정신 장애를 생기게도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눈빛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