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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만난 봄
첨부파일 : 사행동 일러스트.jpg, 2020.07_05_main.jpg

 

“수술만 끝나면 놀러 가는 거야. 힘내!” “응. 할 수 있어!”

 

수술실로 출발하기 직전, 아빠가 주먹을 불끈 쥐자

테무렌도 씩씩하게 답했다. 몽골을 떠나온 순간부터 아빠는 “이제 모험을

떠나는 거야”라며 용기를 북돋았다. 막상 테무렌이 수술실로 떠나자 아빠의 눈엔

눈물이 차올랐다. 아들은 몽골에선 치료조차 어려운 소뇌 종양을 앓고 있었다.

열 살 아이가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아빠의 최선은 여기까지였다.

이제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불운 속 작은 행운들 

지난 3월 29일이었다. 시골집에 놀러간 테무렌이 머리가 아프고 계속 구토를 한다며 전화했다. 평소 같으면 아프면서 크는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텐데 그날은 뭔가 이상했다. 배탈일 거라던 의사는 드문 경우지만 뇌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했다. 큰 병원으로 옮겨 MRI 검사를 받았다. 아빠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소뇌의 혈관을 둘러싼 종양을 발견한 것이다. 어려운 위치에 퍼져 있어 치료하기 어렵다고 했다. 순간 숨이 멎은 듯했다. “지난 주까지 저와 말을 타고 달렸던 아이예요. 그때의 호기로운 표정과 목소리가 생생한데 종양이라뇨. 모든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MRI 검사를 받지 않았다면 병명조차 모른 채 순식간에 아이를 잃었겠지?’라는 생각에 닿았어요. 할 수 있는 조치를 모두 취하자. 그리고 반드시 아이를 살리자고 마음먹었죠.”

 

 

테무렌을 치료하려면 해외 병원으로 가야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있었다. 코로나19로 모든 비행기의 이·착륙이 중단된 상태였다. 유일하게 나흘 뒤인 4월 4일에 출발하는 인천행 전세기가 남아있었다. 이 비행기마저 놓치면 테무렌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의사와 지인들이 추천한 서울아산병원에 치료를 의뢰했다. 소아신경외과 나영신 교수가 입국에 필요한 서류를 급히 작성해 주었다. 하지만 비자 발급과 여권 연장, 비행기 표를 구하기엔 시간이 모자랐다. “제가 한국에 갈 방법을 찾는 동안 테무렌은 소뇌에 고인 물을 빼내는 시술을 받았어요. 뇌압이 올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고통받는 아이 옆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서울아산병원에 데려가 보지도 못할까 봐, 고통에 지친 아이가 포기해버릴까 봐 정말 무서웠어요.”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4일로 예정된 비행 스케줄이 8일로 미뤄진 것이다. “4일을 번 거예요. 딱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만큼이었죠.” 치열한 좌석 경쟁이 또 한번 애간장을 태웠다. 저마다 출국해야 할 사정이 있었다. 이때 테무렌의 사정을 들은 두 유학생이 선뜻 좌석을 양보했다. 그동안의 두려움은 희망으로 바뀌었다. 

 

모든 장애물을 넘어서 

입국하자 공항과 임시 격리 시설, 서울아산병원에서 코로나19 검사가 반복되었다. 감염 여부를 기다리는 1분 1초가 길게만 느껴졌다. 연이어 음성 판정을 받은 후 나영신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따뜻하게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는 나 교수의 모습에서 험난한 여정으로 지친 마음을 안심시킬 수 있었다. “아이의 상태가 조금 어렵습니다. 일단 수술을 해 봐야 알 것 같네요.” 수술 성공률을 들을 순 없었다. 하지만 몽골에선 수술해보자는 이야기조차 듣지 못했던 터라 긍정적인 예감이 들었다. 고맙게도 나 교수는 아이의 상태를 고려해 감염예방 절차를 조정하고 수술 일정을 앞당겨 주었다. “저는 격리 기간 중이라 수술 전후로 4일이나 아이와 떨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의료진이 잘 보살펴 줄거라 믿었어요. 대신 딱 한 가지를 부탁했습니다. 아이에게 병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는 거였죠. 마음이 깊은 아이라 괜한 미안함에 아픈 걸 숨길까 봐서요.” 

 

다시 봄이 돌아오다

11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격리병동에서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던 아빠에게 테무렌의 영상이 도착했다. “아빠, 안녕~.” 잔뜩 붓고 힘없는 모습이었지만 테무렌이 수술을 잘 이겨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벅찬 기쁨을 누구와 나눌 길이 없어 창문 밖으로 힘껏 소리쳤어요. ‘내 아들이 해냈다!’라고요.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었습니다.”

 

나 교수는 더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종양 99%를 뗐습니다. 혈관에 붙은 1%는 방사선으로 치료하면 되고 2~3년간 조심하면 재발 가능성은 낮습니다.” 아빠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신이 나의 모든 기도와 소원을 들어주었다는 고마움을 통역 없이 직접 전하고 싶었다. “병원에 환자가 이렇게 많은데도 만나는 의료진마다 테무렌에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 매번 찾아와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묻고 살피는 국제진료센터 차동진 차장님, 우리의 입과 귀가 되어준 톨 선생님 등 모두 감사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몽골로 초대해 광활한 대자연에서 진짜 휴식을 선물해드리고 싶어요.”

 

 

테무렌은 차츰 열 살 소년다운 웃음을 되찾아 갔다. 수술하며 생긴 삼킴 장애도 재활 치료를 통해 빠르게 극복했다. 아빠는 이미 다음 모험을 계획했다. “병실 창 밖으로 보이던 110층 전망대에 가보려고요!” 그리고 테무렌에게는 나영신 교수님 같은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생사를 넘나든 모험을 마치고 퇴원하던 날, 화창한 봄볕이 테무렌 부자를 마중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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