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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감성 에너지로 얻은 보람 - 산부인과 김영탁 교수

▲ 1989년 산부인과 의료진과 함께. 앞줄 오른쪽 첫 번째가 김영탁 교수

 

1989년 봄. 분만장을 나오는데 ‘제1호 분만 의사’라는 축하를 받았다. 개원 멤버이기에 경험하는 재미난 타이틀이었다. 초창기 산부인과는 4명의 교수와 2명의 전공의로 꾸려졌다. 산과, 내분비, 종양 세 파트로 나뉘긴 했지만 환자가 많아 종양 파트에 전념할 수 있었던 건 10년이 지나서다. 내시경 암 수술과 같은 최신 임상 술기 개발이나 항암 바이러스 백신 연구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의료진 사이에선 병원이 보장한 자율성을 바탕으로 밤새 연구하고 환자를 돌보는 문화가 자리 잡아갔다.

 

진료 외에 꼭 챙긴 몇몇 활동이 있었다. 병원보에 ‘메디컬유머’라는 코너를 약 3년간 연재해 직원들에게 잠깐의 여유와 웃음을 전했다. 병원 갤러리 위원장으로도 활동하며 환자와 보호자에게 예술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는 데 힘을 보탰다. 또 30년간 기우회 회장으로 평소 접하기 힘든 직원들과 소통하고 스트레스도 풀며 동아리 활동을 이어왔다. 바둑에서 터득한 생활 자세와 지혜는 의학 연구와 진료에 적용할 수 있었다.

 

▲ 2006년 신관 건설 현장에서 병원발전위원회와 함께. 오른쪽 세 번째가 김영탁 교수

 

2004년에는 신관 건설을 위한 병원발전위원회의 부위원장을 맡았다. 임태환 교수를 위원장으로 최은경, 박승일, 고윤석 교수 등과 벤치마킹을 위해 미국 전역의 병원을 둘러보았다. 앞서가는 병원 대부분은 환자 위주의 공간을 갖추고 있었다. 우리 병원도 기능적인 행정 업무 공간 대신 희망의 벽과 쉼터, 공연 스테이지 등을 마련해 환자들이 쾌적함을 느끼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2008년 5월에 문을 연 신관은 환자 우선의 병원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었다. 

 

2015년 서울아산병원을 방문한 해외 의학자들과 함께. 앉은 사람들 중 왼쪽 다섯 번째가 김영탁 교수

 

2013년 박건춘 전 원장님으로부터 국제진료센터장 제안을 받았다. 진료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브랜드가 약해 해외 환자의 방문으로 이어지지 않는 아쉬움을 늘 갖고 있었다. 병원의 위치조차 모르는 외국인을 만날 때마다 세계적 병원으로 도약해야겠다는 의지는 더욱 커졌다. 각국의 대사와 부인을 초청하고 국제 이슈를 다룬 포럼을 기획하며 서울아산병원의 진가를 알렸다. 또한 외국인 환자 유치와 여러 나라에 해외 병원 진출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내국인 환자를 다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국인 환자까지 흡수하는 것에 대한 의료진의 저항감이 컸다. 스스로도 가난하고 아픈 사람을 돕는 병원의 정체성이 해외 사업과 상충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기도 했다. 국내 의료 현실이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료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망에서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확신이 섰다. 2016년 신관 4층에 센터를 이전하며 국제사업실로 조직을 확장했다. 해외 진출 시 직원 참여에 대한 설문 조사에서 높은 관심과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한해 500여 명의 해외 의학자가 우리의 첨단 의술을 배우러 온다. 특히 중동 국가에서 한국과 서울아산병원의 인지도가 크게 높아진 것을 체감한다.

 

2015년 의료진, 임직원 30여 명과 무료급식 지원 후. 앞줄 오른쪽 세 번째가 김영탁 교수

 

외부인 혹은 환자의 시선으로 병원을 바라보며 배운 것이 있다. 병원에 대한 환자의 신뢰와 믿음이 당장의 수익보다 값진 재산이라는 것이다. 최선의 치료를 펼쳤음에도 환자에게 합병증이 생길 때가 있다. 한번은 해외 학회 일정을 취소하고 중환자실의 환자 곁을 지켰다. 방어적인 자세 대신 소통하며 진정성을 보이자 보호자는 “교수님, 걱정 감사해요. 어서 출장 다녀오세요”라며 오히려 나를 격려했다. 사람을 위한 감성 에너지가 모든 문제의 해결 실마리라는 것을 항상 잊지 않으려고 한다.

 

“서울아산병원 사람들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하는 이유가 뭔가요?” 2015년 공동연구 협약을 위해 방문한 미네소타의대 연구소장의 질문을 받았다. 늦게까지 꺼지지 않는 연구실 불빛을 보며 그 원동력을 궁금해했다. 세계적인 병원을 만들고자 하는 사명감과 긍지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0년 수해 피해로 인근 4개 병원에 분산된 환자들을 회진 다니던 순간, 2002년 의약분업 파동 때 교수협의회장으로 진료 공백을 메우려고 임상 과장들과 당직 일정을 짜던 순간, 2007년 산부인과 과장을 맡기 직전 신입 전공의가 다 그만두어 일일이 설득하며 고민하던 순간 등. 나의 과거를 돌아보니 아프고 어려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내 능력 이상을 발휘할 기회들을 얻었고 이를 통해 긍지를 느껴왔다. 늘 바쁘고 힘든 가운데 점점 열악해지는 의료 환경을 헤쳐나가는 후배들에게 감성 에너지를 잃지 말자고, 어떤 보람이 기다리는지 다시 꿈꿔 보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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